아침에 일어나 보니 코가 사라져 있었다. 고골은 이 황당한 설정을 통해 제국 러시아 사회의 뒤틀린 자화상을 웃음 속에 날카롭게 비춘다.
작품 줄거리 요약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어느 평범한 아침. 이발사 이바노비치는 식탁에 앉아 아내가 구운 빵을 자르던 중,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한다. 빵 속에 *‘잘린 코’*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경악한 이바노비치는 이 끔찍한 물건을 몰래 처리하려 한다.
이바노비치는 코를 수건에 싸서 네바강에 던지려 하지만, 지나가던 순찰대에 발각될까 두려워 도망친다.
그 시각, 중위 콜랴코프는 침대에서 깨어나 자신의 얼굴에서 코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울 앞에 선 그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어쩔 줄 몰라한다.
혼란에 빠진 콜랴코프는 급히 외출복을 챙겨 입고, 거리로 나선다. 그는 신문사, 경찰서, 관청을 전전하지만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거나 아예 무시해버린다.
그러던 중 콜랴코프는 거리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자신의 ‘코’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고급 관리 복장을 입은 채 거리를 거닐고 있는 것이었다.
놀란 콜랴코프는 코를 붙잡아 자신의 것임을 주장하려 하지만, ‘고위 관리 코’는 자신은 중위 따위와는 무관하다고 무시하며 경찰에 콜랴코프를 내쫓게 만든다.
절망한 콜랴코프는 신문 광고로 코를 찾으려 시도하지만, 조롱만 당하고 만다. 경찰에게 뇌물을 주며 적극적으로 수색을 요청하지만 코는 잡히지 않는다.
한때 귀족 사회에 입성하려던 그의 꿈은 ‘코 없음’이라는 치명적인 결함 앞에 무너지고, 콜랴코프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너져가는 공허함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 아무런 논리적 설명도 없이, 어느 날 아침 콜랴코프는 자신의 침대 옆에서 사라졌던 코를 발견한다.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 코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의 얼굴에 붙어 있었다.
코를 되찾은 콜랴코프는 마치 이 모든 사건을 잊은 듯, 다시 예전처럼 사교계 활동을 재개하고, 지위를 유지하는 데 몰두한다. 고골은 이 기괴한 사건을 설명 없이 마무리하며, 오히려 그 부조리함을 더욱 강조한다.
작품의 주제와 핵심 메시지
『코』는 단순한 희극이 아니다. 고골은 이 황당한 사건을 통해 제국 러시아 사회의 관료주의, 신분제도의 허상, 외모와 사회적 지위에 집착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코는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라, 사회적 위신과 존재의 상징이다. 코를 잃었다는 것은 곧 ‘존재의 불인정’이며, 사회적 무능력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외적인 지표에 의존해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는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꿈과 일상이 경계 없이 뒤섞이는 서술 방식은 이후 러시아 문학과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코』는 부조리와 현실 비판이라는 두 흐름을 동시에 품은 고골 특유의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감상 및 개인적인 해석
『코』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현대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소셜 속 프로필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태, 외모나 직위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코'를 잃고 찾는 중위 콜랴코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또한 고골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코가 왜 사라졌는지, 왜 돌아왔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어처구니없는 결말은 오히려 '답이 없는 세계'라는 존재론적 불안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개인적으로는 콜랴코프가 코가 돌아온 뒤에도 특별히 성장하거나 달라지지 않는 점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찰하는 존재라기보다, 고통조차 곧 잊고 다시 체면 유지에 급급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은 듯하다.
작가 소개와 시대적 배경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은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작가로,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외투』, 『죽은 영혼들』 같은 작품을 통해 현실 비판과 환상적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문체를 개척했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러시아는 농노제와 강력한 계급 구조가 지배하던 시기로, 부조리와 억압이 만연했다. 고골은 이런 사회적 모순을 웃음과 풍자의 옷을 입혀 표현했다. 『코』는 그의 초기 작품으로, 이후 러시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문학에도 강한 영향을 남겼다.
함께 읽어보기
고골이 그린 인간의 부조리와 사회의 모순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외투』도 함께 읽어보길 추천한다. 또한 비슷한 주제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도 함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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