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는 한 가지 사랑 이야기를 Rosso와 Blu 두 개의 렌즈로 보여줌으로써,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다면적인지를 말해준다.
작품 줄거리 요약은 이전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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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렌체에서, 사랑은 시간을 되감는다 『냉정과 열정사이』 – 작품 줄거리 요약
10년 전의 약속, 그날의 피렌체로 돌아간 청춘은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멈춰버린 사랑과 흐르는 시간이 교차하는 섬세한 감정의 결이 한 편의 그림처럼 펼쳐진다.작품 줄거리 요약 – 『냉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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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제와 핵심 메시지 – 『Rosso』와 『Blu』의 비교
『냉정과 열정사이』는 하나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권의 책에서 전혀 다른 결로 표현된다. 『Rosso』는 남자의 시선으로 ‘기억과 기다림’을 이야기하고, 『Blu』는 여자의 시선으로 ‘상처와 회복’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같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그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Rosso – 기억과 시간의 복원
준세이의 이야기는 기억의 보존과 기다림의 성숙에 관한 것이다. 그는 10년 전 이별 후에도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을 복원하듯, 그 시간을 곱씹고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간직한다. 두오모와 복원 작업, 이탈리아의 거리들 위에 쌓인 그의 감정은 차분하지만 단단하다.
시간이 흐른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랑은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를 복원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Rosso는 사랑의 본질이 감정의 격정이 아니라, 감정이 지나간 후에도 계속 남아 있는 ‘의지’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외부와 단절된 조용한 정서를 통해, 과거를 지닌 채 살아가는 방법을 탐색한다.
Blu – 상처와 감정의 회복
아오이의 이야기는 상처받은 감정의 복원과 자기 치유의 서사에 가깝다. 그녀는 도망치듯 이별했고, 10년 동안 여러 관계와 일상 속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의 끝에서, 다시 준세이를 향해 한 발 내딛는다. 이건 단지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껴안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을 복원하는 이야기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다시는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자신과의 화해가 먼저일 때, 사랑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Blu는 사랑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되찾는 여정에 방점을 찍는다. 아오이에게 준세이는 목적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열쇠 같은 존재다.
감상 및 개인적인 해석 – 두 개의 사랑, 하나의 침묵
『냉정과 열정사이』는 기억과 감정, 오해와 용기, 그리고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마치 서로를 등진 거울처럼, 같은 사건을 다른 결로 비춘다.
Rosso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준세이가 두오모 앞에 서 있는 장면이다. 그는 눈물도, 분노도 없다. 단지 그곳에, 그 시간에 서 있어야만 했던 어떤 필연이 느껴진다. 마치 그 자리에 서는 것만으로도 모든 기다림이 정당화되는 듯했다. 준세이는 아오이를 기다렸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용서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그는 10년을 버텼고, 그 시간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반면 Blu에서 아오이는 더 흔들리고 더 인간적이다.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감정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껴안은 채 살아가는 모습은 때로 답답하지만 솔직하다. 특히 그녀가 전철 안에서 창밖을 보며 피렌체를 떠올리는 장면은, 우리가 과거의 한 장면을 마음속에서 재생할 때의 그 서늘한 감각을 닮아 있다. 아오이의 여정은 결국 스스로를 직면하기 위한 싸움이었고, 피렌체행은 일종의 자아 복원 여행이었다.
이 두 이야기를 다 읽고 난 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방식으로 같은 사람을 기억해내는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그 감정이 완전히 어긋났더라도, 마지막 순간 마주설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의 한 완성형일 수도 있겠다고.
『냉정과 열정사이』는 대사보다 여백이 많고, 사건보다 정서가 진한 소설이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흐르는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마치 수십 년 전의 필름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기분.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Rosso와 Blu는 반드시 서로를 향해 돌아가는 두 방향의 나침반처럼 느껴질 것이다.
작가 소개와 시대적 배경
츠지 히토나리(辻仁成)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음악가이며,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며 다양한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섬세한 문체와 도시적 감성으로 많은 독자층을 형성했고, 냉정과 열정사이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공동 저자인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는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여성 시선으로 사랑과 인간관계를 풀어내는 데 탁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두 작가의 협업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이후 영화화되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함께 읽어보기
같은 제목, 같은 사랑 이야기지만 소설과 영화는 전혀 다른 감정의 결을 보여준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스크린과 책장에서 어떻게 다르게 기억하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포스트에서 비교해 보기 바란다.
👉 [같은 사랑, 다른 시선 – 『냉정과 열정 사이』 소설과 영화 비교]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사랑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는 소설이 좋았다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추천하고 싶다. 사랑과 공허, 감정의 흐름을 음악처럼 그려낸 문장이 인상 깊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청춘의 상처와 재생이 조용한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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