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세련된 파리의 외로움 속, 사랑이라는 감정의 진폭
작품 요약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고요하고 감각적인 문장 속에 흔들리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심리소설이다. 무대는 1950년대 파리. 주인공 ‘폴’은 서른아홉 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겉보기엔 안정된 커리어와 삶을 살아가지만 내면은 텅 비어 있다. 그녀는 십 년 가까이 유부남인 ‘로제’와 연애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 관계는 더 이상 설렘이나 기대를 주지 못한다. 로제는 결코 아내를 떠나지 않으며, 폴은 매번 그의 배려 없는 언행에 실망하고 상처받는다.
어느 날, 폴은 로제의 친구의 아들인 ‘시몽’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는 젊고 자유로우며, 자기 감정에 충실한 인물이다. 폴보다 무려 14살이나 어리지만, 그는 폴에게 꾸밈없이 다가오고 솔직한 애정을 표현한다. 시몽의 돌발적인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저 음악 취향을 묻는 말이 아니라 폴의 내면을 열어보게 만드는 열쇠처럼 작용한다.
폴은 처음엔 그 관계를 가볍게 넘기려 하지만, 시몽의 순수한 열정과 집요한 애정은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현실보다 감정을 택하고, 폴을 위해 기꺼이 모든 걸 포기할 각오를 한다. 그녀 역시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과 따뜻함에 휩싸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죄책감과 두려움이 맴돈다.
그러나 현실은 감정보다 냉정했다. 폴은 결국 로제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시몽의 미래를 위해 그와의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고백도 없이 조용히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후 그녀는 다시 로제를 만나지만, 그 관계 역시 달라지지 않는다. 폴은 결국 두 남자 사이가 아닌, 자신의 외로움으로 돌아온다.
교과서적 주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세대 차이, 여성의 독립성과 사랑 사이의 갈등, 감정의 본질과 고독을 주제로 삼는다. 특히, 폴이라는 인물은 20세기 중반 유럽 사회에서 자립적 삶을 추구하는 여성상을 상징하며, 그녀의 내적 갈등은 당시 여성들이 겪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대변한다. 이 작품은 감정의 진정성과 사랑의 무게, 그리고 자아의 외로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생각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폴은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자기보호’를 택한 인물이다. 이것이 비겁하다고 말하기보단, 시대적 배경과 여성이 처한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눈에 띄는 건 시몽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사랑에 대한 이상주의자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만, 어쩌면 현실을 모르는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반면 폴은 감정보다 현실을 먼저 알고 있는 ‘어른’이다.
이 둘의 관계는 우리가 지금도 겪는 사랑과 삶 사이의 균형감각을 되묻는다. 브람스의 음악처럼, 사랑도 결코 단조롭지 않다. 오히려 그 복잡성과 애틋함 속에서 진짜 감정이 살아 숨 쉰다.
결과적으로 보면 폴은 자기를 좋아해주는 젊은 남자 시몽 대신 로제를 다시 만나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책 앞부분에 나온 로제의 무심함이 말미에도 그대로 반복된다. 로제의 담배 냄새를 다시 맡으니 마음이 편해진다는 폴, 이것도 어쩌면 나쁜 남자 로제에 끌리는 폴의 마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폴은 다시 외로워진다.
저자 소개: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열여덟 살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으로 문단을 뒤흔들며 ‘천재 소녀 작가’로 불렸다. 그녀는 일상의 공허함, 청춘의 방황, 사랑의 권태 등을 세련된 문장과 담백한 시선으로 풀어내며 현대 문학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녀 특유의 감수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작 중 하나로, 프랑스 문학사 속에서도 여전히 여운 짙은 작품으로 남아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 제목 끝에 점 3개를 붙여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암시하는 저자의 서정적이면서도 심리적인 접근 방식의 한 표현이라 볼 수 있고, 특히 그녀의 삶과 작품을 꿰뚫는 인생관을 보여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J’ai le droit de me détru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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