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는 고갱의 삶을 모티프로 했지만, 둘의 인생에는 닮은 듯 다른 결들이 교차한다.
“달을 쫓느라 6펜스를 놓친 사람인가, 아니면 6펜스 따위는 애초에 눈에 없던 사람인가?”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는 보통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 인물과 픽션 속 인물 사이엔 흥미로운 균열이 있다. 이 글에서는 문학이 포착한 예술가의 욕망과 현실 속 예술가가 감당한 대가를 비교하며, 픽션과 실제 사이에 흐르는 진실을 살펴본다.
픽션 속 스트릭랜드, 무례하고 광적인 예술의 화신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증권 중개인으로 살아가다 돌연 모든 것을 버리고 타히티로 떠나는 인물이다. 가족, 명예, 돈, 인간관계마저 내팽개친 그는 오로지 그림에만 집착한다. 병적일 만큼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사회 부적응적 면모는 그를 ‘예술의 순수성’으로 신화화시키면서도, 동시에 불편한 인물로 만든다. 소설은 그의 죽음 이후에야 남긴 작품들이 인정받게 되는 아이러니를 그린다.
현실의 폴 고갱, 신화와 이면 사이의 인물
실제 고갱 역시 중년이 되어서야 파리의 금융인을 버리고 화가의 길을 택했다. 그는 타히티로 떠나 원시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으며, 당시 유럽 미술이 가지지 못한 색채와 감성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러나 스트릭랜드처럼 완전히 세속을 떠난 은둔자는 아니었다. 프랑스 미술계와의 관계를 유지했고, 생전에 일정한 명성도 얻었다. 타히티 생활 또한 ‘낙원’이라기보다는 병과 가난, 그리고 원주민과의 복잡한 관계로 얼룩져 있었다.
둘 다 쫓은 것 – 예술, 그리고 무언가 더
스트릭랜드는 예술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는 듯 보이지만, 고갱은 ‘문명에 대한 회의’, ‘자기 존재에 대한 실험’이라는 더 넓은 맥락 속에서 움직인다. 스트릭랜드는 종교적 신념처럼 예술에 몰두하며 주변의 고통에도 무감각하다. 반면, 고갱은 가족과의 단절에 죄책감을 느꼈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를 반추하는 흔적도 남겼다. 둘은 같은 ‘예술’을 좇았지만, 걸어간 길의 인간적인 층위는 다르다.
소설은 왜 고갱을 ‘스트릭랜드’로 바꾸었는가?
서머싯 몸은 직접 고갱의 삶을 모방하지 않았다. 그는 스트릭랜드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예술이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고갱의 삶이 영감을 줬을지언정, 스트릭랜드는 오히려 예술을 위해 인간성을 버린 괴물에 가까운 존재다. 그 과장을 통해 몸은 예술의 절대성에 대한 냉소 혹은 경외를 표현한다. 이 픽션은 오히려 독자에게 예술가를 신화화하거나 악마화하지 말고, 그 이면의 인간을 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지도 모른다.
달과 6펜스, 현실과 허구 사이의 그림자
『달과 6펜스』는 고갱의 삶에서 출발했지만, 픽션은 픽션으로 남는다.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향한 맹목을, 고갱은 예술과 현실 사이의 줄타기를 보여준다. 그 둘은 “달”을 보려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6펜스”를 잃거나 내려놓은 인물들이다.
소설이 그리고자 한 건 결국 ‘천재’의 초상을 넘어,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욕망과 회피의 이중성이 아닐까. 문학이 현실을 재해석하는 방식은, 종종 그 현실보다 더 인간적인 무언가를 담는다.
함께 읽어보기
실제 고갱의 생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그가 남긴 유산과 타히티 시기의 삶은 위키백과 폴 고갱 페이지나 뉴욕 현대 미술관의 폴 고갱 페이지를 통해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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