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기의 삼국지 인물 열전 — 1화 진수와 나관중, 삼국지의 탄생

강의 요약

EBS 정원기의 삼국지 인물 열전 1화는 삼국지라는 거대한 텍스트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추적하며, 역사서 삼국지를 쓴 진수와 통속소설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을 한 무대에 세운다. 강의는 먼저 3세기 말 진수가 위·촉·오의 실록을 모아 65권 분량의 정사를 편찬했음을 상기시킨다. 이어 명나라 때 활동한 나관중이 이 사료에 배송지 주석, 민간 설화를 덧입혀 장편 서사로 재탄생시켰다는 과정을 시청각 자료와 함께 설명한다.

 

정원기 교수는 "정사와 연의는 싸우지 않는다"는 말로 두 저작의 공존 가치를 강조한다. 진수는 냉엄한 권력 교체기를 기록했고, 나관중은 그 기록 위에 영웅·의리·전략을 입혀 대중의 상상력을 확장했다. 강의는 이 차이를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진실'의 층위로 구분하며, 두 저작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삼국지 콘텐츠가 세기를 넘어 살아남은 동력이라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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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와 서사의 간극

진수의 정사는 본기와 열전으로만 이루어진 건조한 연표에 가깝다. 권력의 논리와 행정의 세목이 중심이어서 서사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맥 빠진 메모처럼 읽히기도 한다. 반면 나관중의 연의는 허구를 주입해 감정선과 서사적 리듬을 완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허구가 단순한 꾸밈을 넘어 당시 명대 상인층이 갈구하던 의(義)의 세계를 투영한다는 사실이다. 즉 연의는 허구를 활용해 동시대 독자의 욕망을 해석하는 데 성공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원전보다 더 넓은 시장을 확보했다.

집단 기억의 거울

삼국지는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편집된다. 조선 후기 목판 번역본 '박통사언해'는 국왕 중심의 질서 회복 서사로 읽혔고, 일본 에도 무사들은 삼국지 인물에서 통치 미덕을 학습했다. 현대 독자는 게임·웹툰·드라마를 통해 삼국지를 접하며 각자의 해석을 생산한다. 결국 삼국지는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사회마다 필요한 가치―충·의·지략·현실주의―를 투사하는 거울이다. 역사서가 사실을 축적한다면, 서사는 사실 위에 집단 기억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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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삼국지 읽기

정보 과잉 시대에 삼국지를 읽는 일은 ‘서사 만들기의 정치’를 공부하는 일이기도 하다. 진수의 객관성과 나관중의 서사성을 교차해 읽으면,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힘을 얻는지를 감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 이는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21세기에 더욱 유효하다. "자료를 모은 뒤, 어떤 프레임으로 배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진수 이후 18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뜨겁다.

함께 읽어보기

강의 영상은 EBS 클래스e 공식 VOD 페이지에서 스트리밍할 수 있다. 나관중의 생애와 저작 배경은 Britannica의 Luo Guanzhong 항목이 간결하게 정리해 두었고, 『삼국지연의』가 조선 사회에서 어떻게 번역·유통되었는지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삼국지통속연의〉 항목이 풍부한 사례로 안내한다.